김근태 이야기

[김근태이야기] “경청으로 만장일치 이끈 ‘김근태 리더십’ 알리고 싶어요”_김병민 김근태기념도서관 운영위원

  • 김근태재단2023.03.03

김병민 김근태기념도서관 운영위원이 정민기 작가의 <만인만상-민중>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김근태 선생과 도서관 이용자의 얼굴 등을 도서관에서 직접 재봉틀로 그려 작품을 완성했다.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 1돌을 기념하고 김근태 선생 11주기를 기억하는 전시 ‘삶의 민주주의, 경청’이 오는 3월5일까지 서울 도봉동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 열린다. 김월식, 스튜디오 하프-보틀, 양아치, 이부록, 이윤엽, 전광표×이지연, 정민기 작가가 참여해 저마다의 시선으로 ‘경청’이란 주제를 들여다본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라키비움’(도서관+기록관+박물관)형 도서관이다. 도서관이면서 민주주의와 관련한 기록을 보관·전시하는 기록관이자 박물관을 표방한다.

고혜진 학예연구사와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병민 운영위원(김근태아카이브센터장)은 김근태 선생의 딸이다. 지난 10일 오후 도서관에서 김 위원을 만나 ‘경청’이 이 시대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중정에 서 있는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맨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고무신들이 둥글게 놓여 있다. 고무신 속과 바닥에선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이런 파놉티콘(원형 감옥) 구도는 김근태 선생을 억압했던 국가폭력을 ‘상징’한다.

김 위원은 “이부록 작가가 2014년 김근태 3주기 추모전에서 처음 발표했던 <근태 서재> 작품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희망의 느낌을 주고 싶다’며 이끼를 심었다”고 설명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탁자 위에 커다란 책자와 헤드폰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전광표×이지연 작가의 <소리씨>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소리로도 들을 수 있는 사운드북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시민은 “김근태도서관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와 자유가 떠올라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뒤에 무슨 일이 생길까는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것보단 ‘내 생각은 이래’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거요”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미술은 시각문화라 주로 눈으로 보는데 이번 전시에선 듣는 감각에 집중했으면 싶었다”며 “전광표·이지연 작가는 작품에 ‘경청’의 의미를 더 담기 위해 도서관에 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최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도서관 개관 1돌·김근태 11주기

전시 ‘삶의 민주주의, 경청’ 기획

민주주의자의 ‘전설적’ 태도 조명

“늘 잘 들어주던 아버지 그리워”

“아이들 ‘김근태 어록’ 소리에 울컥”

“일상의 민주주의 스미는 공간으로”


김근태기념도서관 김병민 운영위원이 중정에 있는 이부록 작가의 ‘근태서재’ 작품 앞에 서있다.

고무신과 푸른 이끼가 나타내는 파놉티콘(원형 감옥) 구도는 김근태 선생을 억압했던 국가폭력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 경청에 주목한 이유를 묻자 그는 “요즘 지도자들을 보면 ‘경청의 리더십’이 굉장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 덕목 가운데 경청이 시작인 것 같아요.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듣기만 제대로 들어도 다음 과정으로 제대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경청’은 함께 활동했던 이들이 평가하는 김근태 선생의 대표적 리더십이다. “저나 오빠의 이야기를 워낙 잘 들어주던 아버지여서, 잘 듣는 사람인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화운동 때나 정치 활동 때 아버지께서 회의를 주재하다가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면 쉬는 시간에 반대 의견을 냈던 분들한테 가서 그저 듣기만 하는데, 다시 회의하면 이상하게 만장일치가 나온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가정적인 아버지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랜 기간 수배와 수감으로 헤어져 살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워낙 짧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감옥으로 보낸 편지에다 ‘아빠는 나를 키우지 않았지만 어버이날이니까 편지를 보낸다’는 등 가슴 찌르는 말을 제가 많이 했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 늘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반박하거나 면박을 준 적이 없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너는 어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니”라는 칭찬을 많이 해줬단다. 다른 사람을 보고 마음 아파하면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냐”,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 “어떻게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냐”는 식이었다. 지금 10살과 8살 된 남매를 키우고 있는 김 위원은 “부모가 되어보니 아버지 생각이 진짜 많이 난다”고 했다.

서울 도봉동 김근태기념도서관 앞에 김근태 선생의 동상이 놓여 있다.


경희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 갖게 된 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집에 있던 온갖 책 가운데 아버지가 중고 책방에서 사 온 미술 관련 책들을 많이 봤다. “추억이 많지 않지만 아버지는 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간다든가, 예술 영화를 같이 본다든가,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셨어요. 화가와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요.”

국회의원 시절 부친은 국외출장이라도 가면 도록을 꼭 사왔다. 김 위원은 최근 미술 전문 출판사인 열화당 대표로부터 “김 선생이 20대 청년시절 도망다닐 때 열화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있는 도록에 서명이 있는 작가들께 연락하면 ‘인연이 전혀 없던 김 선생이 전시를 찾아서 보러왔다’고들 하더라고요. 그게 또 인연이 돼 저와 전시를 함께한 분들도 있고요.” 도서관 개관 전시에 참여한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 작가도 그런 인연이다. 정정엽 화가는 본인도 잃어버린 첫 개인전 도록이 선생 집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김 선생은 생전에 도록, 서적은 물론이고 대학노트, 쪽지, 편지 등 온갖 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뒀다. 김 위원은 “어릴 때 집 한쪽에 시커먼 책들도 있었는데 아버지 고등학교 때 큰 비에 축대가 무너져 진흙에 잠긴 책들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중·고교 시절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던 김 위원은 그 많은 책을 찾기 쉽도록 노동이나 역사 같은 주제로 분류하곤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세워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상자 500개에 담아 큰방 두 곳에 보관했던 유품 1만5천여 점이 기반이 됐다.

김근태도서관은 십진분류표에 따른 도서분류명이 독특하기로도 유명하다. 문학은 ‘희망은 힘이 세다’, 언어는 ‘평화가 밥이다’, 역사는 ‘정직은 미래를 낳는다’, 총류는 ‘대화할 수 있는 용기’로 표현했다. 모두 선생의 어록이다. “사실 십진분류 말고 김근태만의 분류를 하고 싶었는데, 공공도서관이니까 상호대차를 해야 해서 십진분류 안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초안은 제가 짰고 다른 분들과 상의해서 분류명을 정했죠.”

도서관은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선생이 했던 행동과 태도를 기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십진분류명으로 실크스크린 달력을 만드는 과정도 있었다. “애들이 달력을 만들면서 ‘나는 ‘희망이 힘이 세다’를 할래요’, ‘나는 ‘평화가 밥이다’로 할래요’ 하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그 말들이 꼬맹이들 입에서 나오니까….”

공적으로 김 선생은 민주화 투사나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주변 지인들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민주주의자’로 기억한다. 김 위원은 도서관을 그 일상의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전승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 명망을 기리는 것보다 아버지가 실천했던 태도를 알리는 게 김근태의 명맥이 더 유지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가랑비에 옷 젖듯 추구하는 도서관이기를 바랍니다.”


원문보기



목록